"공대 왜 가요? 의대 나오면 연봉 3억이 기본인데"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4-02-13 10:22   수정 2024-02-13 10:30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상위권 공과대학 및 과학계 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구개발(R&D) 현장의 인력난이 가중되지 않도록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대 정원 늘어난 건 19년 만
13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려 총 5058명을 뽑겠다고 발표한 이후 학원가에 의대 재수 관련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 의대 입시로 유명한 대치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2000명 증원은 서울대 이공계열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라며 "정부 발표 이후 상담 예약 전화가 몰아쳐 업무를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직장인과 대학원생 문의가 크게 늘어 서울 본원 의대반 편성 확대와 경기 분원 직장인 의대 진학 특별반 추가를 논의하고 있다고도 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건 2006년 이후 19년 만이다. 증원된 2000명은 서울대 자연계열 입학생 수(1844명)보다 많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공계 전체 선발인원 4882명의 4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의대 정원 증원이 본격화하는 내년부터 기존 이공계 학생들의 이탈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종로학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험생 2025명 중 47.7%는 '의대 정원 확대가 재수에 유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40.4%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재수를 하겠다'고 답했다.

반도체 대기업 입사 1년차인 연구원 A씨는 "의대 도전은 5년을 투자해도 남는 장사"라며 "의사 자격증만 갖고 있으면 정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장모님과 아내가 의대 준비를 적극 권장했다"고 말했다. 서울 명문대 공과대학 재학 중인 B씨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아예 진로를 틀었다. 그는 "대기업에 입사한 학과 선배들 초봉이 1억이 안된다"며 "페이닥터(월급을 받는 의사)는 2년차만 되도 연봉 3억원 정도 벌 수 있는데 도전을 안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공계 R&D 인재 이탈 분위기가 감지되자 정부 기관과 기업 및 대학에 비상이 걸렸다. 홍순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국장 직무대리는 "이공계 인력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을 어떻게 하면 우수 연구자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과제 검토를 하는 단계"라며 "단기 대책이 아니라 처우 체계 개선 등 비전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장기 정책을 마련해 장·차관에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반응이 엄살이 아니라는 건 통계로도 드러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수시모집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미등록 비율은 72.9%로 나타났다. 이 학교 전체 학과의 평균 미등록 비율 64.6%보다 높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미등록 비율은 95.0%로, 고려대 평균 미등록 비율 88.9%보다 높다. 지난해 서울 주요 대학의 자연계열 내 무전공 학과들의 중도탈락률도 높았다. 지난해 연세대 융합과학공학부(ISE) 중도탈락률은 15.6%로 연세대 전체 평균의 5배에 달했다. 성균관대 공학계열은 12.4%, 자연과학계열 14.2%로, 역시 학교 평균을 웃돌았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나 반수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학과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연세대, 성균관대, KAIST, 포스텍, UNIST, DGIST, GIST 등과, SK하이닉스는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 등과 계약학과 협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중도 이탈로 석·박사 같은 고학력은 커녕 학사 후보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련한 채용전제형 계약학과가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가기 위해 잠시 거치는 '정류장'으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첨단분야 육성 방침에 따라 새롭게 신설된 학과인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역시 14.1%가 등록하지 않았다. 이 학과는 아마존·메타 등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까지 제공까지 내걸었지만 학생들을 붙잡지 못했다. 서울대 자연과학·공과대학 석사과정 전공 28개 중 16개는 2023학년도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국내 대학원 신입생 충원 현황' 자료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 KAIST, GIST, DGIST, 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일반 대학원 석사 충원율은 각각 76.5%, 62.9%, 80.6%, 76.6%에 그쳤다.

반도체 등 첨단 분야 인력난 더 심해
이미 극심한 인재 가뭄을 겪고 있는 과학기술 R&D 현장에선 한숨만 쉬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는 10년 후 미래가 안 보인다는 반응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엔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이 30만4000명이 필요하지만 공급은 5만4000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엔 1784명이 부족했지만 인력 부족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도 지난해 9월 서울대 강연에서 반도체 구인난을 토로하며 "회사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내놓은 '2023년 하반기 주요 업종 일자리전망'에서도 지난해 반도체 산업 미충원율은 27.3%(2200명)로 전년 대비 4.4% 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전 산업 평균(12.0%)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미래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는 2028년까지 미래차 산업 기술 인력이 4만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AI) 분야 인력은 2027년까지 실제 산업계 수요보다 1만2800명이 부족할 거라는 고용노동부 분석도 주목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이공계 인재 수급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인재 이탈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사 상황을 꼼꼼히 모니터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장기적으론 신입사원 채용 확대하는 것보다 기존 인력의 숙련도를 높이는 쪽으로 인재 운영 방침이 고도화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인력 유출을 막고 우수인재 확보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홍유석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은 "의대-공대의 제로섬 게임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국가 어젠다를 다시 세팅해야 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입한 '과학기술 인재 병역 특례 제도'에 준하는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30년간 반도체 연구를 한 김용석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에 주고 있는 병역특례 제도를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한정해 대기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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